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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 발자취 > 걸어온 길 > 교단의 법주

걸어온 길 대산종사님이 걸어 오신 길 대산종사님이 꿈꾸었던 평화의 세상을 바라봅니다.

  • 출가와 구도
  • 교단의 법주
  • 경륜과 업적
  • 일상수행
  • 종법사 위(位)에 오르다 천지는 한 물건도 버릴 곳이 없으므로 천지가 되었고, 여래는 한 중생도 버릴 곳이 없으므로 여래가 되셨다.

    나는 한 동안 하섬에서 요양하며 『정전대의』와 『교리실천도해』를 연마하고
    강의하며 초안을 만들고 있었다.
    원기 46(1961)년 말에는 신도안에 머물며 정산 종법사의 유지를 어떻게 받들까 연구 중이었다.

    원기 47(1962)년 1월 24일 정산 종법사께서 삼동윤리를 설하시고 열반에 드시자 ‘소자(小子)요 소제(小弟)요 소동(小童)’으로 살려던 나에게 막중한 종법사 위가 맡겨졌다.

    나는 어려서 불문(佛門)에 들어왔으므로 사회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무능하고 덕량과 건강이 충실치 못한 이 사람을 교단의 대표로 추대하니 과하고 중한 느낌을 금할 수 없으나, 다만 스승님에게 바친 한마음으로 매진하겠다는 다짐과 서원을 했다.

  • 신도안을 개척하다 신도안의 돌밭을 일구는 것이 마음의 묵정밭을 일구는 것임을.

    나는 정산 종법사께서 열반하시기 전 신도안을 지키라는 하명을 받들고 삼동윤리가 가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신도안은 미신의 소굴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한 교단의 종법사가 그곳에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한 통속으로 본다는 이유로 교단 대중들조차 외면하였다.
    5년여를 신도안 돌밭을 일구며 담을 쌓고 때를 기다렸다.
    교단을 대표하는 역할보다 상징적인 법주(法主)로 지냈다.
    그 사이 위경을 맞아 대구에 다녀온 것이 큰 고비였다.

    훗날 신도안의 돌밭을 일구는 것이 마음의 묵정밭을 일구는 것임을 교도들에게 설했다.

  • 개교반백년 사업을 구상하다 하섬을 찾아 해상훈련 도량을 염원

    원기 55(1970)년 7월, 하섬해상훈련원을찾았다.
    이곳 하섬은 9년 전 요양하며 『정전대의』를연마하고, 후진들에게 강의를 한 곳이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하섬을 찾아 해상훈련 도량을 염원했다.

    원기 56(1971)년 10월 7일 개교반백년 사업으로 정산 종사 성탑을 봉건했다.
    정산 종사가 탄생하였던 성주 성주를 성지화하는 것을 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