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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대산종사님이 걸어 오신 길 대산종사님이 꿈꾸었던 평화의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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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세거사의 서원 나는 이미 공중사에 던져진 모이었다. '나'를 버리고 시방세계를 일터로 정한 몸이니 육도사생...

    나는 세계지도를 보며 ‘장차 주유천하 하리라’ 마음먹었다.
    주위 인연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유학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주유천하와 유학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고
    16세의 어린 나이로 이 회상에 입문했다.

    어릴 적 청운의 꿈은‘불목하니로 5억 생 이 공부 이 사업하고 살겠다’는 서원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미 공중사에 던져진 몸이었다. ‘나’를 버리고 시방세계를 일터로 정한 몸이니육도사생(괯道四生)을 권속으로 삼고 그들을 제도하는데 평생 부끄럽지 않을 공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대종사님께서 아셨던지‘출세거사(出世居士)’라는 호를 주셨다.

    출세거사는 대산(大山)이란 호를 정식으로 받기 전 나의 아호가 된 셈이다.

  • 생사를 넘나들다 고요한 밤 홀로 앉아 원적처(圓寂處)를 찾아가니 모든 법이 공한 곳에 영지불매(靈知不昧) 분명하다.

    내 나이 서른 살이었다. 혈기왕성하게 수행 정진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병마가 엄습하고 말았다. 당시 보화당한약방에 근무하던 김서룡 선생님을 간호하다 폐결핵에 전염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병들어 곧 죽을 줄 알았지만, 망태 하나 짊어지고 산천으로 다니면서 느껴지는 감상이 들었다.

    이 천지에 나처럼 한가롭고 재미있는 사람이 다시없는 듯 했다.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만은 대지허공 법계에 걸릴 것 없이 소요하며 자재한 심경이었다.

  • 교정원 행정 책임을 맡다 간절히 원하옵건대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내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내 음성이 메아리치는 곳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마다...

    1945년 8·15광복을 맞게 되자 국가나 세계 모두 어려운 시기였고, 교단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교단에서는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펼쳤고, 황정신행께서 해방 후 쏟아진 고아들을 거두기 위해 보육원을 제안하여 ‘보화원’이란 간판을 걸고 운영했다.

    나는 이때 인촌 김성수 선생과 조소앙, 조완구 등 정계인사들을 무던히도 만났다.
    그들은 나를 정계 회의에 참석시키려 하였지만, 나는“정치의 역할과 종교의 담당 분야가 다르므로 직접 참여는 하지 않겠지만 정신적으로 힘을 밀어드리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