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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담 보고싶은 스승님! 할아버지! 종법사님! 함께했기에 더욱 그리워집니다.

전법전사 활불이 되라
윤석화 교도/남중교당

원기53년 늦은 봄 오후쯤으로 기억된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총부경내를 산책하고 계시는 대산종사를 뵀다.

그때만해도 원불교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익산 시내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가끔은 총부 옆에 살고 계셨던 누님(전타원 윤성규 종사) 집에 가서 간장, 고추장, 김치 등을 챙겨오곤 했다. 그때마다 바로 옆에 있는 총부 구내를 홀로 이곳저곳을 구경을 했었다. 하지만 먼 발치에서 대산종사를 뵙곤 했어도 직접 뵙고 말씀을 받든 적은 없었다.

그 후 전생의 소중한 인연이 있었던지 매부(아산 김인용 종사)의 주선으로 원광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됐다.

원기56년 6월에 입교를 하고, 그 다음해 원광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게 돼서 당시 지도교수였던 진산 한정원 종사와 함께 회장단 모두가 대산종사께 인사드릴 기회가 생겼다.

대산종사는 나의 손을 꼬옥 잡으시면서 “대종사님의 전법전사 활불이 되라” 는 격려의 말씀을 모두에게 해주셨다. 그때가 원불교 반백년기념대회 전후이기에 총부는 총부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바빴었다. 우리 교우회 회원들도 자원봉사자가 되어 미력하나마 손발이 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했었다.

그런 관계로 대산종사를 자주 뵐 수 있었고, 법문도 자주 받들 수 있었다. 법문을 받들 때마다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아 대산종사를 모시고 진행되는 대중집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며 나만의 기쁨과 위안을 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ROTC 장교로 군 생활을 하게 되면서 원불교와는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지만, 전역 후 대학원에 다니면서 대학교당과 남중교당에 다니게 됐고 또 다시 대산종사를 뵐 수가 있었다. 대산종사께서는 3,4년 만에 뵙는데도 바로 나를 기억해 주시고 “교우회장 역할 잘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걸 보고 ‘참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바로 이런 분을 가르켜 성인이라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대산종사와의 특별한 인연이 하나 더 있다. 결혼을 해서 첫 아이가 아들이었다.

평소에 나를 잘 챙겨주는 누님이었기에 나는 가끔 아들을 데리고 누님의 집에 놀러 갔었다. 어느날 아들을 데리고 누님 집에 갔는데 총부 송대에 대산종사를 뵈러 가고 없었다.

나도 아들을 데리고 총부 송대에 가니 대산종사와 누님 외에 다른 어른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다가가서 인사드렸더니 “윤 교수 왔냐”며 바로 알아보시며 아들을 무릎위에 앉히셨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그 아들이 대산종사의 머리를 잡고 올라가려고 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누님이 깜짝 놀라 잡아 끌어내리려 하자 대산종사는 조금의 미동도 안하시고 인자하신 할아버지 모습으로 “그냥 아이가 하는 대로 놓아두라”고 하시면서 싱글벙글 웃으시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그 아이가 바로 아들 윤항구 교무이다. 어쩌면 그때 대산종사께서 전무출신 될 아기라고 점지해주셨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지중한 인연이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우리 전 가족은 일원가족이 될 수 있었다. 일원가족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대산종사의 크나큰 은혜에 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대종사의 전법전사 활불이 되어 교화대불공의 주역으로 거듭날 것을 굳게 다짐해 본다.